진술인 방귀희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일하고 있는 김태은이라고 합니다. 교육과정평가원에서는 개원 이래로 계속 학습부진학생들하고 그다음에 기초학력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해 왔고요, 관련된 사업도 해 왔고 저 같은 경우에는 2009년도부터 지금까지 학습부진학생들을 지원하는 연구와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마 그간의 경험에 기반해서 말씀을 드리게 될 것 같습니다. 저희는 보통 아이들을 직접 만나러 현장에 나가는데요, 최근에 고등학교 학습부진학생들을 만 났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제가 ‘어떻게 지내니’라고 물었을 때 했던 얘기가 ‘말하고 경주하는 것 같아요’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제가 다양한 아이들을 만났는데 이 아이의 말하고 경주하는 것 같다는 그 표현이 참 되게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표현이었습니다. 말하고 경주하는 기분은 아마 굳이 설명해 드리지 않아도 어떤 기분인지 아실 거라고 봅니다. 이 학생이 과연 언제부터 말하고 경주하는 기분이었을지, 왜 그렇게 되었을지, 자신의 속도대로 천천히 가도 괜찮을 수는 없었을지, 설사 이 친구가 지금 수학을 못한다고 해도 5년 후에도 ‘나는 수학을 못할 거야’라는 생각을 좀 없앨 수는 없었을지, 이런 것들이 굉장히 궁금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기초학력을 보장한다는 것을 저희는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의 개념이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잘하고 못하는 것은 누구나 또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는 거지요. 그런데 저희는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힘, ‘학습력’이라고 표현을 했거든요. 적어도 모든 사람이 배울 수 있는 힘을 갖도록 보장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보았습니다. 학습을 할 수 있는 힘이 있으려면 기본적으로 읽고 쓰고 셈하는 능력이 갖춰져야 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거나 타인과 소통하는 능력을 키워야 됩니다. 그리고 배울 수 있는 힘을 갖기 위해서는 배운다는 것 자체가 즐겁다와 연결이 돼야 됩니다. 예전에 유대인들이 알파벳을 가르칠 때 손가락에 꿀을 찍어서 쓰게 하고 꿀을 다시 빨아먹게 했다, 이게 아마 학습과 즐거움을 연결시키기 위한 지혜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해 봅니다. 그런데 우리 학습부진학생들은 학습과 즐거움이 연결되지 않는 장면이 굉장히 많습니다. 저는 최근에 교실수업 속에서 학습부진학생들을 연속적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부진학생들과 하루 일과를 같이합니다. 중학교 1학년 영어시간이었는데요, 친구들이 모두 교과서의 문장을 소리 내어 읽지만 이 친구는 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읽지 않는 것인가 다시 보면 읽지 못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얘는 한 번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였습니다.수학시간이었습니다. 평면도형에서 대각선의 개수를 구하는 공식을 아이들에게 유도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과정을 이해하는 데 굉장히 신기했던 장면은 칠판 앞으로 나와서 공식에 대입해서 십각형의 대각선 수를 셉니다. 그런데 공식에 대입은 하는데 10 곱하기 7 나누기 2의 계산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이처럼 위계가 강한 교과의 경우에는 한 번 놓친 학습의 내용은 이후의 모든 학습의 장애요소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현장에서 계속 발견이 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가 뭐냐 하면, 앎과 모름의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실은 무기력입니다. 학습에 대한 무기력인데, 하지 않음이 반복이 되면 일상이 되고 습관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생긴 무기력은, 저희가 아이들과 1교시부터 거의 6교시까지 같이 생활을 하는데 1교시부터 4교시를 그 아이들이 참아낸다는 것도 굉장히 어려울 것 같은데 아이들이 참아내거든요. 무기력해졌기 때문에 참아냅니다. 그런데 이러한 무기력에 대한 학습은 심리적인 장벽을 만들어 가지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게 하고 결국은 자신감 하락과 학습부진의 고착화로 연결시켜 버립니다. 실은 과거에도 교실에서 공부 못하는 학생들은 항상 있었지요. 그런데 그 시절에는 공부를 좀 못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회에서는, 저희가 이렇게 표현합니다, ‘기초학력 보장은 기초생활 보장이다’…… 그래서 교육에서의 빈익빈 부익부도 굉장히 심해졌고 심지어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 이런 표현들도 많이 씁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점들이 하루이틀 불거졌던 것은 아니고 그간에 많은 노력들을 시도해 왔습니다. 학습부진학생에 대한 필요한 보정자료를 만들어서 보급도 해 왔고요, 담임교사 책임제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학습부진학생들을 담임교사가 책임지고 지도를 해라. 그리고 또 한때는 보다 강력한 정책이 투입돼서 단위학교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학교가 두 손 두 발 다 든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학교 밖에 어떤 연계 체제를 만드는 것도 해 왔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흐름의 내용을 제가 조금 보기 쉽도록 표로 정리해서 제시했습니다. 저희는 이것을 기초학력 보장 버전1부터 버전3이라고 표현을 해서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노력을 시도할 수 없는 많은 한계점들이 항상 있어 왔습니다. 제가 5개의 한계점을 정리했는데요. 첫 번째 한계는, 수업 시간에서의 지원․지도만으로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보충한다는 것은 굉장히 역부족인 상황입니다. 저도 현장에서 지금 보고 있지만 교사 1명에게 학습부진학생 지도를 혼자 책임지라고 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1명의 학생도 놓치지 않는 맞춤형 교육을 실현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교사를 돕는 인력이 상당히 필요함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들하고 직접 인터뷰한 내용들을 인용했는데요. ‘아이한테 도움을 주기 위해서 곁에 가서 지켜보지만 그 아이 옆에서만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이게 선생님들의 얘기였습니다. 두 번째 한계입니다. 아이들이 정규수업을 못 따라가니까 방과 후에 남겨서 지도를 합니다. 그런데 방과 후에 남겨서 지도하는 것은 반드시 학부모의 동의를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가장 큰 문제가 뭐냐 하면 학부모들이 학교를 내 아이를 돕는 기관이라고 인식하는 게 아니라 평가기관으로 인식을 합니다. 만약에 내 아이를 돕는 기관이라고 인식하면 학교에 와서 자기의 자녀에 대해 얘기를 합니다. ‘우리 아이가 어디가 아프고 어디가 안 좋으니까 이렇게 도와주세요’라고 말을 하는데 평가기관이기 때문에 내 아이가 낙인이 될까 그걸 가장 우려합니다. 학부모 면담을 해 봤더니 ‘우리 아이는 도움반 가는 것을 굉장히 싫어해요. 아이가 싫어하기 때문에 강요를 못 하겠어요’, 이게 학부모의 얘기입니다. 만약에 학교가 개별 학생들, 그러니까 개별 학생이라 하면 내 아이의 성장이지요. 자신의 아이의 성장을 돕는 곳이라는 믿음과 신뢰가 있으면 학교에서는 할 수 있는 부분들이 굉장히 많아집니다. 낙인에 대한 걱정보다는 자신 아이의 성장에 대해서 의미가 있어지는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 번째 한계입니다. 실은 이것도 최근에 발견했는데요. 부진 아이들을 면담하는 과정에서 제가 물었어요. ‘학교에서 하는 수업이 이해가 안 되니?’ 그랬더니 ‘한 번 들으면 이해가 안 되는데 두 번 들으면 이해가 돼요’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아이들이 다 수업내용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니?’ 그랬더니 그 부진 아이 얘기는 ‘걔네들은 다 미리 한 게 아닐까요?’라고 얘기를 합니다. 또 초등학생도 만나 봤습니다.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니?’ 그랬더니 ‘학원에 다니면 돼요’라고 얘기를 합니다. ‘학원에 다니면 수업이 어렵지 않니?’라고 했더니 ‘학원에서 엄청 열심히 많이, 소위 빡세게 하면 돼요’ 이렇게 표현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학교 공부를 따라가려면 꼭 학원에 가야 되는 거니?’라고 했더니 ‘수업내용을 이해하는 애들은 다 학원에 다닐 걸요?’라고 표현을 합니다. 물론 부진 아이들의 얘기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그런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라고 인식한다는 건 저는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라고 보았습니다. 선행을 해야만 학교수업을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 학생들이 과연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지, 교실 수업에서는 평균학생들의 수준에 맞춰서 수업을 한다고 하는데 평균의 수업이 무엇인지, 평균에는 어떤 학생들이 포함되는지, 평균은 개별 맞춤형을 포함하는지, 이런 것들이 의문스러웠습니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원에 갑니다. 학습부진학생들도 학원에 갑니다. 학부모도 학생도 학교에서 제공하는 방과 후 나머지 학습보다 학원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학원을 다니는 이유가 그다지 목적이 없어 보입니다. 다른 아이들이 가니까 나도 간다라는 식입니다. 공교육에서 메우지 못하는 부분을 사교육을 통해 도움을 받는다고 하는데 국가가 보장해야 할 기초학력을 사교육을 통해 갖춘다는 상황에 대해서는 반드시 재고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네 번째 한계입니다. 제가 최근에 보고 있는 학년이 초등학교 3학년, 5학년, 중학교 1학년 교실을 보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교실을 가면 모두가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해결방법이 보입니다. 이 시기에서 발생한 구멍은 메우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교실로 가면 구멍이 상당히 커져 버립니다. 이 아이들은 수업 내 지원으로는 도저히 되지 않습니다. 중학교 1학년 교실을 가면 따라올 사람만 따라와라라는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중학생이 될수록 나머지 학습은 더 어렵고 선생님들은 얘네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얘네들을 잡으 러 다니는 게 더 힘들다고 합니다, 남지 않기 때문에. 따라서 기초학력을 보장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예방과 조기지원입니다. 이 말은 굉장히 오래 전부터 강조되어 왔었는데요. 실제적인 구현에 있어서 많은 장애들이 있었습니다. 예방을 하려면 첫 번째로 어떤 상태인지 확인을 해야 되거든요. 그런 것들을 진단해야 되는데 그 진단이 평가로 인식되어 버려서 적극적인 액션을 취하기 위한 첫 단추부터 끼우기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 발생해 버립니다. 작은 구멍은 메우기가 쉽습니다. 언제 구멍이 발생하는지 촘촘하게 진단해야 되고 즉각적인 보충지도가 이루어져야 됩니다. 구멍이 커지는 것을 방치하면 배우는 것의 의미를 알지 못하게 되고 자신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으로 되는데 솔직히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이 부분이었습니다. 본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계속 누적되면 결국은 사회적인 문제로밖에 연결될 수 없는 이런 현상들을 저희는 확인했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한계입니다. 선생님들이 리셋 현상이라고 표현하십니다. 이 리셋 현상이 뭐냐 하면 1년 내내 지도했는데 연말에는 부진을 벗어난 것 같다가 새 학기가 되면 다시 나온답니다. 방학이 지나고 나면 다시 돌아온답니다. 이것이 리셋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가 뭔가를 보면, 선생님들의 표현을 빌리면 부진 아이들 지도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 같다는 표현을 쓰십니다. 그만큼 굉장히 소모적이고 소진적인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독의 밑부터 메워야 됩니다. 그다음에 충분히 채워질 수 있도록 꾸준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되고 원인 진단과 연계성 있는 사후관리가 굉장히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이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희는 학습부진학생들을 위한 단계적인 지원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 안전망에서 혹시 빠져나왔을지라도 두 번째와 세 번째 안전망에서 걸러질 수 있는 구조가 안정적으로 갖춰 줘야지만 저희가 기본적으로 기초학력 보장을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표로 한번 정리해 봤는데요. 1단계 수업 내 지원부터 학교 내 지원, 학교 밖 지원 3단계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수업 내 지원입니다. 이 안에서 되도록 빠져나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예방책일 것입니다. 마지막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이러한 다섯 가지 한계를 통해서 기초학력보장법이 상당히 필요하다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데요. 저는 실은 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 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 법안들을 찾아봤습니다. 헌법 제31조에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이렇게 되어 있고 교육기본법 제3조에는 “모든 국민은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 받을 권리를 가진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여기 ‘모든 국민은’에 ‘학습부진학생’이라는 말을 대체해 봤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딱 대체해 보고 읽어 보니까 되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기초학력이 부족한 아이들이 충분히 교육받을 수 있는 구조 속에 과연 놓여 있는가 이런 질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학생들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 안전망이 만들어져야 된다라고 연결하였습니다. 학습부진학생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는 태어날 때부터 교육받고 학습함으로써 인간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라는 학습권적 의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가의 교육은 모든 학생의 성장을 지원하듯이 기초학력이 부진한 학생에 대해서도 개인의 학습속도를 고려해서 해 볼 수 있는 기회, 잘 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그 아이가 한 번이라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지원해야 한다고 봅니다. 말은 솔직히 굉장히 쉽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현장에서 보면서 느꼈던 것은 세 가지가 상당히 필요했습니다. 첫 번째는 시간입니다. 효율성은 버려야 했습니다. 이 아이가 절대 빨리 바뀔 거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인력이었는데요. 이 아이들한테 정말 필요한 것은 나만의 선생님이었습니다. 나를 지원해 주는 나만의 선생님이 옆에 있을 때 아이들은 빠르게 변했습니다. 세 번째는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온 학교가 지혜를 모아야 하는 번민이었습니다. 굉장히 번거롭고 답답함에 대한 견딤의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언제든지 할 수 있도록 여건이 조성될 때 저희가 하고자 하는 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한 아이도 놓치지 않는 개별 맞춤형 교육을 위해서, 그리고 법적인 테두리의 안정적인 제도하에서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지 도․지원하기 위해 기초학력 보장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